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는가?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는가?
  • 임칠호 논설위원
  • 승인 2020.07.15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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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너머 멀리

행복이 산다고 들 하기에

아 아 나도 남들과 함께 찾아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 왔네

저산 너머 멀리 저 멀리에

행복이 산다고 들 말 하기에

 

칼 붓세 ( 독,시인1872~1918 ) 는 그의 시 <저산너머>에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암시하고 있다.

즉 행복이 살고 있다는 유토피아는 산 너머도 아니며 가시적 상태로 존재 하지도 않는다.

유토피아 UTOPIA를 영문으로 표시하면 nowhere이다.

이를 파자破字하면 now+here 곧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여기이다.

현재 서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대는 제도에 의하여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적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취업 준비 청년들이 화가났다. 민주 시장경제의 기둥인 기회 균등 위배라는 것이다.

일자리는 기업을 통하여 수요에 따라 공급되는 것이 순리인데 경제 침체와 악성 전염병 등으로 심히 위축 되어있다.

그래도 공직자들이 머리를 짜내어 기업을 통하여 제대로 된 일 자리를 만들어 내야한다.

하루에 담배꽁초 몇 개 줍는것이 일자리는 아니다. 황색 쪼끼 입고 지나가는 전철소리 듣는 것이 일자리는 아니다.

노인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본 일이 있는가? 기적汽笛을 한번 듣는 것도 힘 겨운데 고막이 걱정 된다.

내일의 유토피아를 준비하는 청년들을 울려서는 않되겠다.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는가?

 

나라 살림은 그 다양성이 방대 하여서 '정책,이라는 두글자에 담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노력하면 최대 공약수는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여야 與野를 두고 균형과 견제, 견제와 균형에 기대를 걸고 말없이 납세 병역 등 의무를 다 하고 있는 것이 국민이다.

국민이 불쌍하다.

여,야는 운동회 날 잠시 청색 ,백색 머리띠를 두른 선수들이다. 경기가 끝나고 청소하는 시간에는 청군도 백군도 없다.

나라의 안보와 국방, 경제, 외교 등은 당리당략을 떠나서 전문가에게 머리띠를 풀어서 맡겨야 한다.

 

일찌기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 和而不同 하고 소인은 동이 불화 同而不和 한다고 알려 주었다. 군자는 정의를 존중하고 소인은 이득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대인 관계 에서 군자는 자기의 개성과 주견 主見을 살려 가면서 잘 조화를 이루지만 소인은 주견도 없이 이득에 따라 덩달아 움직이므로 여러 사람과 고루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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