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또 한눈
의사의 또 한눈
  • 임칠호 논설위원
  • 승인 2020.10.0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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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쯤이다.

기내에서 황급한 방송이 나왔다.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혹시 의사 선생님 계시면 도와 주십시요" 즉시 한분이 달려가 응급처치로 위험을 면했고 그 고마운 의사가 대한민국 정 0 0 국회의장으로 확인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직업은 세계적으로는 35,000, 우리나라에도 15,000여종이 있으며 모두가 다 귀하지만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더 고마운 분들이라 하겠다. 더욱 이분들의 또 한눈이 의료를 넘어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있어서이다.

조선시대 독학으로 의학을 한  지석영은 1879년 일본군 소속 부산 제생의원에서 종두법을 배워 5천년간 숙명처럼 동행하던 마마 媽媽 with smallpox , 천년두天然痘 (경우에 따라 얼굴이 얽게되는 법정 전염병)을 이제 사전에서나 볼수있게 하였다.

그는 1898년 의醫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도 의술을 일본병원에서 익혔으니 요즘 어떤이들의 기준으론 친일파(?)라고 할는지 모르겠다.

3일천하-곧 갑신정변의 주역 서재필은 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 워싱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펜실베니아에서 병원을 운영한 의사이다.

그러나 마음은 오매불망 대한독립 이어서 3.1운동 이후 래한, 독립신문 발행, 독립문 건립, 독립협회 결성 등 애국운동에 몸을 받쳤다.

평북 출신 의사 장기려는 6.25 사변시 월남, 부산에서 복음병원을 운영하며 "건강할때 이웃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시작한 청십자 의료보헙조합은 지금 의료보험 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한국의 슈바이처> <이 시대의 마지막 성자> 장기려의 공로다.

장기 설사병으로 갓난 아기들을 무기력 하게 사지로 떠나 보내던 때 의사 장재원은 1959년 그 원인을 찾으려고 병원문을 닫고 미국 유학으로 답을 찾았다.

즉 젖먹이 아이가 모유나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영양 실조로 죽어가는 것은 선천적으로 유당 분해 효소가 없기 때문으로 영양분이 풍부한 콩으로 미음을 만들어 먹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베지밀이 되었다고 한다.

안과 의사 공병우가 발명한 한글 타자기와 그의 한글사랑은 남 다르다. 한글 기계화 운동가, 한글 문화원장, 한글학회 고문 등의 직함이 잘 말해준다.

특히 한글 자판은 디지탈 시대를 예견한 神의 선물이 아닌가 한다. 미국 언론이 우한 폐렴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을 다시 세우려고 애쓰는 그룹(직업군)을 열거 했는데  의사-간호사-소방관-응급처치사 순이다.

우리나라도 의사그룹의 수고가 크다.

그런데 얼마전 이들이 화 났다. 의사 전형 방법을 하나 더 만들려는 정치때문이었다고 한다.

방역 일선에서 가운을 벗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글 한 모금을 전 합니다.

오늘도 안양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 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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