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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0년10월09일 20시3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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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근간은 ‘德(덕)’ 이었다 2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오복수 어르신 편]
오복수 어르신

신협의 산증인

그 연장선으로 신협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성당의 신자들과 작은 손 보태며 시작한 ‘청산신협’을 내 손으로 전국 최우수 신협으로 만들었다.

처음 280만원 출자금에서 320억 까지 28년 동안 신협의 역사를 만들었다. 성당의 신자들도 구호물자를 얻으려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던 밀가루 신자들이 5할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돈 나올 주머니 없는 사람들을 모아 소꿉장난처럼 시작한 신협이 내 손을 거치며 단단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신협이 되었다.

 

1976년 책상 하나에 여직원 하나로 시작했다. IMF를 겪으며 금융권에 휘몰아친 쓰나미도 고스란히 맞아보았고 그래도 살아남았다.

지금 신협 건물도 내가 산증인이다.

시골 사람들의 쌈지 돈이 모이는 곳이다. 피땀 흘린 돈들, 함부로 가벼이 다룰 수 없었다.

한창 달러이자를 받는 돈놀이가 성행하던 때 시골 사람들이 살 길이 막막해 그 비싼 이자를 토해내며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

서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일수 돈을 쓰며 제살 깎아먹는 고리에 숨이 헉헉거렸을 때 신협에서 저리로 융통을 해주면서 숨구멍을 뚫어주었다.

 

신협이 발족될 즈음 금융사기 피해가 청산을 휩쓸고 가서 신협도 의심의 눈길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정직하게 일하게 된 동력이 되었다.

지금은 나이 들어 넉살도 늘었지만 젊을 땐 숫기가 없어서 예금권유도 쑥스러워 그 업무는 내가 일하면서 넘어야 할 산의 중턱이 되었다.

28년 동안 수익 올리고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배당금을 놓치지 않고 챙겨주었다. IMF 터지고 대우채에 넣었다가 깨지는 바람에 어쩔도리가 없었다.

시절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근간은 ‘德(덕)’ 이었다 1

일을 대하는 자세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다르지 않아 ‘적 없이 살자’가 관계의 바탕이 되었다. 살다보면 가치관에 흠집이 나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는 오해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대출 해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처신을 잘못하면 구설수에 오르고 신협에 대한 평판도 안 좋아질 수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밥 먹자” 하면 무조건 거절했다.

그 과정이 야멸차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책임감, 도의적인 양심이 모두 필요한 때였다.

 

초창기에는 돈이 모자라서 청주 중앙회나 도 연합회에 가서 돈을 가져와야 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로 수천만 원을 들었다 놨다 하지만 그때는 계좌 간 송금이 안 되어서 현찰을 직접 가져왔다.

버스타고 운전수 바로 뒷자리에 현금 박스를 밟고 앉아서 가슴 졸이며 청산까지 왔다. 오가는 길 누군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인정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업무는 철저했다. 오죽하면 어떤 직원이 “숨 쉴 틈이 없다”고. 그 덕분에 대과없이 30대 초반부터 62세 정년까지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사장 선거 두 번 하는 동안 건강도 잃어보고 성취감도 맛보며 번민의 계단도 오르내렸다.

이사장 재임 시 4년간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시고 집집마다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알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이사장 선거를 치루는 과정은 살얼음판을 매일 걷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아내가 “여보 그만해요” 라고 할 정도였다.

시절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근간은 ‘德(덕)’ 이었다 1

두 번째 선거 때 허상은 아니었지만 계단을 오르는 과정 속에서 가슴이든 몸의 한축이든 기울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균형을 잃는다는 건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암 투병을 하고 현역을 정리하면서 허탈감도 맛보고 단단한 결실 속에서 자부심도 충만했다.

세상의 이 모양 저 모양을 두루 다 보고 맞이한 나이 듦이 나쁘지 않다. 이제 사는 이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이 좋아져 안경을 벗는 것처럼 오히려 시원하다.

 

신협 이사장 두 번 하고 라이온스, 주민자치 위원장, 노인 경찰 등 은퇴 후에도 사회 활동의 막을 내리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의 경험이 고향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았다. 백구두에 반짝이는 무대복을 입고 색소폰 연주를 하는 멋쟁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7년이 되었다. 노년의 큰 즐거움이다.

시절마다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근간은 ‘德(덕)’ 이었다 1

4남매 중 신부, 수녀도 만들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선용 재경 경용 미용이 그리고 8명의 손주가 고마운 결실이다.

명절이면 방마다 들어앉아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게 하더니 이제 손주들도 내 키를 다 넘어섰다.

아내와 걷는 호젓한 마을길이 이제 가장 친한 동무가 되었다.

수십 년을 밟고 다니며 아는 척 한번을 제대로 못한 마을 길, 빗자루를 들고 나가 슬쩍 한번 쓸어주고 말을 걸어봐야겠다.

“어이 친구, 자네도 수고 많았어.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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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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